본문 바로가기

Work Log/Financial

국민연금에서 ‘국민’은 누구일까

오늘은 국민연금이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의 경영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스튜어드십'에 대해 알기 쉽게 정리해봤습니다.


이진우 경제평론가​



국민연금이 지분을 갖고 있는 주요 기업들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간섭하는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개별 기업의 주주총회 이슈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진그룹 사건 처럼 대주주가 국민들의 공분을 산 경우 검찰 수사 등과는 별개로 국민연금이 해당 기업의 주요 주주로서 명확한(엄정한) 대응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커졌습니다.


이 소식이 중요한 이유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 중인 기업은 297개 에 달합니다. 10% 이상인 기업도 80개가 넘습니다. 한진 외에도 삼성전자 등 대한민국 대표주 들이 대부분 포함됩니다. 그만큼 많은 주주 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기준

여론을 쉽게 요약하면 “국민연금이 대주주를 견제하는 데 나서라”는 것인데 한번도 그런 경험이 없는 국민연금은 어떤 일에 나서야 하는지, 나설 때는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아무런 매뉴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민연금기금 국내주식 수탁자 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어떤 경우에’ 국민연금이 나서는지, 나서게 되면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를 정했습니다.

‘어떤 경우에’ 나서게 되는지에 대한 항목에는 “예상하지 못한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발생한 경우”와 같은 대단히 포괄적인 내용이 들어있어서 국민연금이 거의 모든 이슈에 대해 간섭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 가 나옵니다. 반면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에 대한 항목에서는 대단히 복잡하고 긴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어서 절차 밟다가 세월 다 지나간다 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경영참여와 관련한 쟁점

국민연금도 회사의 지분을 가진 주주이니 주주의 권리를 행사해서 경영에 참여하고 간섭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몇가지 쟁점은 남아있습니다.

1. 국민연금은 정부의 돈이 아닌 국민의 돈인데 그 돈으로 사들인 주식의 의결권은 ‘국민’이 아닌 ‘정부’의 의도대로 행사될 가능성 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정책에 협조적이지 않은 기업에 대해 정부는 못마땅한 생각이 있을텐데 이것이 국민연금을 동원한 경영 간섭 또는 경영권 위협으로 확대 발전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2. 경영진이 배임이나 횡령 등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저질렀을 때는 해임을 요구하는 게 합당하지만, 주주의 이익과는 무관한, 그러나 국민감정을 거스르는 예를 들면 ‘갑질’ 논란 등에 휘말렸을 때 국민연금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이냐의 문제 입니다.

법적으로는 처벌할 근거가 약하지만 국민감정은 대단히 나빠져있는 경영진에 대해 국민감정이 그의 해임을 요구할 경우 국민연금이 그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 또는 SK그룹의 총수가 도덕적인 논란에 휘말렸을 때 그것이 반도체 매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국민연금이 나서서 해당 총수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것이 합당한 행위인가 혹은 국민감정에 영합한 과잉행동 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불안감이나 의구심이 있다고 해서 국민연금이 주주의 권리를 포기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것도 늘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국민연금이 주주의 권리는 충분히 행사하면서도 정치적 압박에서는 충분히 독립적인 기관이 될 수 있을지, 그런 적극성과 독립성을 모두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가 필요할지 가 이 고민을 해결하는 관건입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할까

참고로 해외의 연기금들 중에는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처럼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경영에 간섭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도 많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국민연금과 직접 비교할만한 곳은 많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같은 외국의 연기금들은 해당 연기금이 ‘의무가입’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그런 연기금들은 주주의 장기 이익이 아닌 정부의 입김 등을 반영해서 기업 경영에 간섭할 경우 투자 수익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캘리포니아 공무원들은 돈을 맡기지 않겠죠.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의무가입”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수준이 약하든 과도하든 맘에 들지 않을 경우 가입자들이 다른 경쟁 연기금으로 갈아탈 방법이 없고, 그러므로 외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할 인센티브가 작습니다. 해외의 연기금들이 적극적 독립적으로 의결권 행사를 하고 있는 바람직한 사례들이 우리 국민연금의 미래상과 동일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국민연금은 우리나라와 같은 의무가입 방식이고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위원회 멤버를 정부가 임명하는 것이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일본 역시 연기금의 적극적 경영참여를 시도한 것이 5~6년 전부터여서 우리가 참고할 선례를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만의 독특한 사정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상속세율을 피해가기 위해 각종 편법을 시도할 여지와 가능성이 높다는 점 에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경영참여와 간섭을 훨씬 더 껄끄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또 그런 과정에서 기업들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 감정도 더 높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연금의 주주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다양한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는 다른 나라에서는 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